홍성역사인물

고암 이응노는 1904년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파리에서 생을 마칠때까지 온 삶을 그림으로 채운 화가입니다.

21세인 1924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처음 입선한 이후 일제시대에 이 전람회에서 여러차례 수상했습니다.

일본 유학을 거쳐 해방후에는 새로 개설된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 교수를 지냈습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50대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습니다. 고암 이응노는 한국의 전통 서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여 유럽 예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 학교를 세우고 서구 젊은이들에게 동양 예술을 가르쳤습니다.

그가 남긴 3만여점의 작품은 전통서화부터 현대의 추상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고 다양합니다.

고암 이응노가 살았던 시대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의 치욕, 해방의 기쁨과 동족 상잔의 비극을 겪었던 격동기였습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향한 고통도 있었습니다.고암 이응노는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을 삶속에서 고스란히 겪었습니다.

1960년대에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러야했고, 다시는 그리던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열일곱 나이에 상경해서 도쿄로, 다시 서울로, 또 파리로. 쉼없이 이어지는 긴 동선속에서 예술세계와 함께 한 인간의 의식세계가 확장해가는 여정 또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암 이응노는 끊임없이 낯선 것을 받아들여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마침내는 인종,남녀,노소,취향까지 융화시켰습니다. 안주(安住)는 감히 그의 삶과 화폭에 침입할 수 없었습니다.

1904 1월 12일 충남 홍성 출생
1922 서울로 상경 김규진의 문하 입문. 호(號) 죽사 받음
1928 전주에서 '개척사' 간판점을 운영
1933 규원 정병조에게 호(號) 고암 받음
1935 일본으로 유학, 혼고회화연구소와 가와바타회화학교에서 서양화와 일본화를 수학하였고, 마츠바야시 게이게츠이 덴코화숙에 입문하여 남종화를 수학함
1945 고국으로 돌아와 수덕여관을 인수하여 운영하다 서울로 상경하여 고암화숙 개설
1948 홍대 초창기 주임교수로 임명, 2년간 동양화부를 지도
1958 서울 소공동 중앙공보관에서 도불기념전을 성황리에 마침, 12월 26일 도불
1960 파게티화랑과 전속계약을 맺음
1965 브라질 제8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은상 수상
1967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2년 반의 수감생활을 함
1977 두번째 정치적사건에 연루되어 국내에서 작품활동이 금지됨
1983 프랑스로 귀화
1989 1월 10일 86세의 나이로 별세, 파리 시립 페르라세즈 묘지 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