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역사인물

한성준은 1874년 6월 12일 충남 홍성군 갈산면 신안리 빈한한 농가에서 한천오의 6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879년부터 민속무용과 줄타기로 유명했던 조부 백운채에게 춤과 장단학습이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7살때부터 ‘승무’를 공부하고 8살부터 여러 잔치 행사에 출연, 천재라는 칭찬을 받았다.

1881년 무렵에는 홍패사령을 따라 다니며 줄을 타거나 재주를 부렸고 14세가 되면서는 홍성골 서학조에게 줄과 재주를 3년간 배웠다. 1938년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전념하였으며, 이 무렵 40여가지에 달하는 전통춤을 재구성하고 집대성하였다.

1940년 2월 부민관에서 제2회 무용발표회를 열어 학무, 살풀이춤, 태평무, 사자무, 신선무, 동자무, 아리랑무 등 20여 종목을 공연하였으며 4월 일본 동경 히비야 공회당에서 첫 해외 공연을 가졌다.

1941년 5월 소설가 이태준, 화가 고희동 등과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하였다. 손녀 한영숙에게 모든 춤을 물려주고 낙향하여 68세의 일기로 타계하였다.

1904 1월 12일 충남 홍성 출생
1922 서울로 상경 김규진의 문하 입문. 호(號) 죽사 받음
1928 전주에서 '개척사' 간판점을 운영
1933 규원 정병조에게 호(號) 고암 받음
1935 일본으로 유학, 혼고회화연구소와 가와바타회화학교에서 서양화와 일본화를 수학하였고, 마츠바야시 게이게츠이 덴코화숙에 입문하여 남종화를 수학함
1945 고국으로 돌아와 수덕여관을 인수하여 운영하다 서울로 상경하여 고암화숙 개설
1948 홍대 초창기 주임교수로 임명, 2년간 동양화부를 지도
1958 서울 소공동 중앙공보관에서 도불기념전을 성황리에 마침, 12월 26일 도불
1960 파게티화랑과 전속계약을 맺음
1965 브라질 제8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은상 수상
1967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2년 반의 수감생활을 함
1977 두번째 정치적사건에 연루되어 국내에서 작품활동이 금지됨
1983 프랑스로 귀화
1989 1월 10일 86세의 나이로 별세, 파리 시립 페르라세즈 묘지 안장

한성준은 1874년 6월 12일 충남 홍성군 갈산면 신안리 빈한한 농가에서 한천오의 6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879년부터 민속무용과 줄타기로 유명했던 조부 백운채에게 춤과 장단학습이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7살때부터 ‘승무’를 공부하고 8살부터 여러 잔치 행사에 출연, 천재라는 칭찬을 받았다.

1881년 무렵에는 홍패사령을 따라 다니며 줄을 타거나 재주를 부렸고 14세가 되면서는 홍성골 서학조에게 줄과 재주를 3년간 배웠다. 1938년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전념하였으며, 이 무렵 40여가지에 달하는 전통춤을 재구성하고 집대성하였다.

1940년 2월 부민관에서 제2회 무용발표회를 열어 학무, 살풀이춤, 태평무, 사자무, 신선무, 동자무, 아리랑무 등 20여 종목을 공연하였으며 4월 일본 동경 히비야 공회당에서 첫 해외 공연을 가졌다.

1941년 5월 소설가 이태준, 화가 고희동 등과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하였다. 손녀 한영숙에게 모든 춤을 물려주고 낙향하여 68세의 일기로 타계하였다.